우리가 어떤 목적지를 향해 갈 때는, 오직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만 생각하기보다는 친구들과 함께 걷는 그 시간 자체의 소중함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WYD를 향해 가는 여정 안에서 우리가 함께 바치는 기도의 시간을 통해 서로를 좀 더 잘 이해하고, 그 기도의 시간들이 개개인에게도 보다 개인적인 의미와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다음과 같이 영성운동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묵주기도나 묵상기도가 어렵지 않지만,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몹시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장벽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특히 WYD는 단지 천주교인들만의 축제가 아니기에, 아직 천주교 신앙에 익숙지 않은 이들도 쉽게 함께할 수 있는 영성운동을 마련하고자 하였습니다. 빨리 뛰지 못하는 형제를 재촉하기보다는 그의 속도도 동일하게 소중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예컨대 어린 아이가 서툴게 바치는 성호경이 성직자가 바치는 성무일도보다 못한 기도라고 누가 감히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각자가 처한 고유한 처지와 상황, 각자의 수준에서 저마다 정성을 담아 바치는 기도와 실천이라면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주님께서는 모두 귀하게 받아주실 것입니다.
그렇기에 수원교구 WYD 영성운동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저마다 의미를 두고 스스로 선택하여 실천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실천사항들을 제시하는 형태로 구현되었습니다.
그렇게 각자가 바치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기도와 실천들이 그저 파편화된 채로 그치지 않고 결국 성령을 통해 하나로 엮어지게 된다는 의미에서, 다양한 실천사항들이 실제 모자이크 작품으로 완성되도록 기획하였습니다. 즉 매일 각자가 바치는 다양한 형태의 기도와 실천은 마치 형형색색의 모자이크 조각을 모으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모인 우리의 기도와 실천은 실물 모자이크 작품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모자이크 예술품은 그리스도교의 영성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좋은 소재입니다. 제각각 모양도 다르고 색깔도 다른 작은 조각들은 개별적으로 보면 매우 보잘 것 없는, 그저 ‘깨진 조각’에 불과해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깨지고 부서진 조각들은 예술가의 손을 통해 일치를 이루어 아름다운 작품으로 완성됩니다. 그리하여 서로의 '다름', 각자가 가진 '부서짐'은 갈등과 분열의 이유가 아니라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의 이유로 승화됩니다.
따라서 다양한 사람들이 성령 안에서 일치를 이루고 있는 교회 공동체는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모자이크 예술품이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교회 공동체 본연의 모습입니다. 서로의 ‘다름’은 제거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체의 ‘풍요로움’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 영성운동을 통해 재확인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다양한 기도와 실천은 매일 새롭게 제시되는 구체적인 ‘지향’을 중심으로 실현되는 형태가 될 것입니다. 매일 제시되는 ‘그날의 기도지향’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요컨대 SNS를 통해 매일 새로운 기도지향이 제시되며 이 기도지향은 실제 젊은이들이 기도를 부탁한 내용들이 익명으로 처리되어 표기됩니다.
이러한 형태를 통해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며, 하루하루 그들의 구체적인 어려움과 기도지향을 위해 함께 기도함으로써 ‘기도를 통한 일치’를 이룰 뿐만 아니라 서로를 매우 구체적이고 인격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4) 빈곤국 청소년의 WYD 참여를 위한 지원
“우리의 기도가 작은 사랑의 열매로”
또한 우리가 영성운동을 통해 일상에서 바치는 작은 기도와 사랑의 실천들이, 실제로도 사랑의 열매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획하였습니다. 목표 퍼센트의 특정 구간을 돌파할 때마다 교구 해외 선교지의 청소년들과 빈곤국 청소년들의 WYD 참여를 위한 지원이 확대될 것입니다.
수원교구 WYD 영성운동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는
이상과 같은 취지에서 기획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목적지를 향해 갈 때는, 오직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만 생각하기보다는 친구들과 함께 걷는 그 시간 자체의 소중함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WYD를 향해 가는 여정 안에서 우리가 함께 바치는 기도의 시간을 통해 서로를 좀 더 잘 이해하고, 그 기도의 시간들이 개개인에게도 보다 개인적인 의미와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다음과 같이 영성운동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묵주기도나 묵상기도가 어렵지 않지만,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몹시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장벽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특히 WYD는 단지 천주교인들만의 축제가 아니기에, 아직 천주교 신앙에 익숙지 않은 이들도 쉽게 함께할 수 있는 영성운동을 마련하고자 하였습니다. 빨리 뛰지 못하는 형제를 재촉하기보다는 그의 속도도 동일하게 소중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예컨대 어린 아이가 서툴게 바치는 성호경이 성직자가 바치는 성무일도보다 못한 기도라고 누가 감히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각자가 처한 고유한 처지와 상황, 각자의 수준에서 저마다 정성을 담아 바치는 기도와 실천이라면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주님께서는 모두 귀하게 받아주실 것입니다.
그렇기에 수원교구 WYD 영성운동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저마다 의미를 두고 스스로 선택하여 실천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실천사항들을 제시하는 형태로 구현되었습니다.
그렇게 각자가 바치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기도와 실천들이 그저 파편화된 채로 그치지 않고 결국 성령을 통해 하나로 엮어지게 된다는 의미에서, 다양한 실천사항들이 실제 모자이크 작품으로 완성되도록 기획하였습니다. 즉 매일 각자가 바치는 다양한 형태의 기도와 실천은 마치 형형색색의 모자이크 조각을 모으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모인 우리의 기도와 실천은 실물 모자이크 작품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모자이크 예술품은 그리스도교의 영성을 이해하는 데에 매우 좋은 소재입니다. 제각각 모양도 다르고 색깔도 다른 작은 조각들은 개별적으로 보면 매우 보잘 것 없는, 그저 ‘깨진 조각’에 불과해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깨지고 부서진 조각들은 예술가의 손을 통해 일치를 이루어 아름다운 작품으로 완성됩니다. 그리하여 서로의 '다름', 각자가 가진 '부서짐'은 갈등과 분열의 이유가 아니라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의 이유로 승화됩니다.
따라서 다양한 사람들이 성령 안에서 일치를 이루고 있는 교회 공동체는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모자이크 예술품이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교회 공동체 본연의 모습입니다. 서로의 ‘다름’은 제거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공동체의 ‘풍요로움’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 영성운동을 통해 재확인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다양한 기도와 실천은 매일 새롭게 제시되는 구체적인 ‘지향’을 중심으로 실현되는 형태가 될 것입니다. 매일 제시되는 ‘그날의 기도지향’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요컨대 SNS를 통해 매일 새로운 기도지향이 제시되며 이 기도지향은 실제 젊은이들이 기도를 부탁한 내용들이 익명으로 처리되어 표기됩니다.
이러한 형태를 통해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며, 하루하루 그들의 구체적인 어려움과 기도지향을 위해 함께 기도함으로써 ‘기도를 통한 일치’를 이룰 뿐만 아니라 서로를 매우 구체적이고 인격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얻게 될 것입니다.
3) 빈곤국 청소년의 WYD 참여를 위한 지원
“우리의 기도가 작은 사랑의 열매로”
또한 우리가 영성운동을 통해 일상에서 바치는 작은 기도와 사랑의 실천들이, 실제로도 사랑의 열매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획하였습니다. 목표 퍼센트의 특정 구간을 돌파할 때마다 교구 해외 선교지의 청소년들과 빈곤국 청소년들의 WYD 참여를 위한 지원이 확대될 것입니다.
수원교구 WYD 영성운동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는
이상과 같은 취지에서 기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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